주변인들이 종종 '왜 철학공부를 해?'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논리적 사고' '인생의 지혜' 같은 거창한 발언 대신 입을 다문다. 저 단어들은 내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철학공부를 하는 이유는
- 감정을 느낄 때
-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 세상의 보다 큰 흐름에 나를 맡기고 싶을때
- 내 존재가 불안할 때
등
이런 여러 순간에 철학은 내게 길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인간을 잠식하는 건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이성은 차갑게 얼어붙어있어서 우리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철학은 이성의 눈으로 감정을 볼 수 있게한다. 이는 둘을 주종관계로 맺는 게 아니라, 이성이 높은 시선을 지녔다는 말이다. 높은 곳에서 현재를 볼 때, 혼란스럽던 상황과 감정은 가라앉고 정리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철학의 가치를 느꼈던 건 아니다. 철학을 1년정도 공부했을 때 회의감이 생겼다. 철학은 겉보기에 효용이 없었고 철학자들이 인생의 진리를 말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의 말은 어렵고 세련되고 멋있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고작 학부생인 내가 보기에도 허점이 있었다. 그래서 '정말 철학은 가치가 없나?'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마음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른 일을 손에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생각에 침잠해있었다. 내 고민의 정체를 분석하던 그 때 스피노자의 명구와 철학체계가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스피노자 철학의 눈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인과관계의 틀을 하나하나 채웠고 흐릿한 외부사물의 본성이 변용시킨 내 신체를 살폈다. 내 마음이 명확해졌고 비로소 행동할 수 있었다. 그 때 그 감정의 끝에 '평생 철학을 곁에 두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은 철학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줬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종합'이 아니라 '분석'이 중요하다.
철학자들의 말을 '종합'하여 진리의 상아탑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내 고민, 좌절을 분석해 철학사상과 접점을 찾으면 그들이 마련한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s) 이를 위해서 평소에 효용성이 떨어져보이는 철학서를, 열심히 읽고 이해해야한다는게 함정이다. 요즘처럼 호흡이 짧은 시대에 긴 안목으로 현재의 무의미를 감내한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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