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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인문학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순수이성비판』은 칸트의 유명한 3대 비판서 중 하나다. 그 서술은 당대 철학자들도 책을 읽으며 고통을 호소할 정도였다고 한다. 문장이 너무 길고, 복문이 많아서 글을 읽다보면 주어가 뭔지 까먹기 십상이다. 칸트는 탈고 후 자신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글이 어렵다. 생소한 철학을 난해한 문장으로 읽으려니까 정말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다. 정말 어려운 내용이 나올 때는 2시간 동안 5페이지를 넘겼다. 그러고 지쳐 쓰려져서 잤다. 읽는 내내 포기하고싶던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수양한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읽는 속도가 5배 가량 빨라져서 그냥 훑어내렸다. 이윽고 책을 덮는 순간 희열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틀라스가 자신의 의무에서 해방된다면 이런 느낌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굉장히 어려웠던 책이다. 그 내용면에서는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이해가 수월했는데, 서술이 너무 난해했다... 그래서 한 문장을 읽으면 그 문장을 내 방식대로 바꿔가며 독해했다. 


개인적으로 초월적 감성학 부분은 어렵지 않았다. 학교 수업을 들은 부분이기도 하고, 책의 초반부여서 의욕 가득한 싱싱한 뇌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순수이성비판 2부, 초월적 변증학부터였다. 지성은 감성을 통일하고 이성은 지성을 통일하고.. 대강 내용은 알아듣겠는데 한 문장 한 문장 분석하려니까 너무 힘들었다. 평소 쓰던 일기도 접고 오로지 책 읽기에만 몰두했다. 평소 승부욕이 강한지라 '나와 한 번 해보겠다는거지?'하는 심리가 컸다. 칸트의 밀당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게 억울하긴 했지만, 어쨋든 그는 죽은 사람이다. 공명에게 진 중달이 될 수 없었다. 칸트의 구상과 사유는 신기했다. 부분부분 모순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Not A를 증명할 수 없다면 A를 유용함의 목적에서 믿을 수 있다는 얘기 등)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서 한 번 더 읽을 참이다.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책을 읽으면서 칸트가 그 후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더욱 알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예지계'개념은 이후 서양 철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더욱 분석적으로 말이다. 칸트는 '예지계'를 저 멀리 내버려두고 "우린 저걸 알 수 없어"라 말하는 데 그쳤지만, 이후 철학자들은 그 예지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설파한다. 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유와 도덕에 대해 시식코너를 열었다. 그 맛을 음미하면서 꽤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 대머리 아저씨한테 다음에 언제오냐고 묻자, 『실천이성비판』으로 돌아올 참이라 한다. 그래서 그것도 사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