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친구와 맥주를 마시다 노벨 문학상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고은말고 좀 새로운 한국 후보가 없을까, 하고 머리를 맞댔을 때 친구가 '김훈'을 언급했다. 그는 김훈 특유의 '긍정적 니힐리즘'문체가 좋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이해가 안 됐다. 무지한 채로 며칠을 보냈는데 『흑산』을 읽자 친구의 이야기가 이해됐다.
인간은 커다란 수레바퀴에 얽혀 산다. 『흑산』에 등장하는 정약전, 마노리, 강사녀, 길갈녀, 황사영 등도 특정한 시대에 삶을 이어간다. 소설은 천주교가 유입되던 즈음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대비는 무부무군한 천주교인을 다 엄벌에 처하라한다. 일단 천주교인이라는 물증이 밝혀지면 누구든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말을 하든 안하든 길은 죽음으로 닿아있었다. 단, 발고하고 배교하면 단숨에 죽을 수 있었다.
천주교인들은 너머 세상을 꿈꿨다. 이 사회에 좌절해서든, 한계를 느꼈든 간에 너머 세상을 바랐다. 정약전은 그 길을 가다가 배반의 길로 돌아서서 현실로 돌아온 반면 황사영은 지배 이념에 저항하다 결국 죽임을 맞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길은 배반의 길, 신념의 길 나뉘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였다. 가는 자에겐 가는 길이고 오는 자에겐 오는 길이다. 길은 밤낮으로 이어진다. 어떤 고정된 속성도 지니지 않은 채 그저 발바닥을 지지한다. 어떤 이에게도 삶은 단념하기 힘들다. 배반의 길을 걸은 자든, 신념의 길을 걸은 자든 각자의 삶을 단념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결국 천주교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맞지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주막을 차리려던 마노리도 죽고, 강사녀 길갈녀도 죽고, 황사영도 죽는다. 마지막까지 삶을 단념치 않고 죽었다. 크고 단단한 수레바퀴에 짓밟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희망과 확신을 느꼈다. 허무주의의 결말로 이르는 길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번식해 겉잡을 수 없이 사상이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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