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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인문학

『호모 데우스』를 읽고

『호모 데우스』는 Homo 와 Deus의 합성어로 '인간 + 신'이다. 신이 되려는 인간에 대한 책인데 이번 추석 때 이 책을 읽었다. 『사피엔스』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도 하라리는 자신의 지적 유창함을 어김없이 뽐내며 재밌고 새로운 통찰을 준다. 500 페이지가 넘는데도 한 자리에 앉아 다 읽을 수 있다. 이런 작품을 쓴 그의 글쓰기 실력 + 번역자의 능숙함에 감탄했다. 또한 예시가 많이 실려있어서 이해가 수월했다! 


  현대는 Modern이다. 우리가 편의상 '현대'라고 부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여전히 '근대'다. 하라리에 따르면 이 시기는 힘을 얻고 의미를 상실한 시대다. 왜냐하면 인과법칙으로 자연을 파악해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대신 신을 중심으로 한 의미 체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신이 준비한 커다란 운명의 하나로서 의미있었고, 그가 인간을 신경써서 창조했기 때문에 특별했다. 그런데 그 "신은 죽었"기 때문에 인간은 의미를 상실했었다. 

  그 공백을 인본주의가 메꿨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중요시한다. 과거에는 '결혼을 할까 말까?'를 고민할 때 성당을 찾아가서 '오 신이시여 제가 이 여인과 결혼을 해도 되겠습니까?' 기도하거나 사제한테 '이 여자랑 결혼해도될까요?'라 물었다면 요즘은 '내가 그녀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가?'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그곳에서 해답이 우러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따르면 된다. 인본주의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의미를 결정할 권위를 가진다. 그가 가치있다고 여긴다면 가치가 있고, 가치 없다고 여긴다면 가치가 없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오로지 그만 알 수 있으므로 각 개인의 마음이 중요하기도 헀다. 현대는 인본주의가 지배하며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다. 

  하지만 최신 과학은 인간을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파악한다. 인간의 행동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이 발현된 결과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전자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인간과 컴퓨터가 근본적으로 같은 메커니즘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는 용량과 성능에 제약이 없다. 반도체는 무한히 집적될 수 있다. 인간의 두뇌용량을 뛰어넘는 반도체도 곧 개발될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는 인간보다 뛰어난 기억과 복잡한 메커니즘 운용 등 탁월한 '지적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량에서 현격한 차이를 불러온다. 인간이 1TB를 저장한다면 컴퓨터는 100TB이상을 저장할 수 있고, 패턴 학습 등의 발전된 학습 능력을 이용해서 인간보다 뛰어난 인식 능력을 갖출 것이다. 컴퓨터가 수집하는 정보는 영역과 한계를 망라하며 각 개인에 대한 정보도 아주 많이 저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저장된 정보를 이용해서 각 개인 스스로도 몰랐던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 때가 되면 각 개인보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그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말할 수 있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관련된 연구에 따르면 300개의 좋아요만 있으면 누군가의 배우자보다 그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알라딘과 같은 인터넷 서점은 자동으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하고 실제로 그 책들은 내 마음에 쏙 든다. 만약 알고리즘이 더 정교화되고, 우리에 대해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받는다면 건강, 취향, 가장 적합한 배우자 등 우리에 대해 더 많은 걸 말해줄 것이다. 

  이 사회에서 인본주의는 빛을 바랜다. 인본주의가 힘을 얻었던 건 "'그' 외에는 '그'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는 전제 덕분이었다. 알고리즘과 컴퓨터가 '그'에 대해 더 많이, 자세히, 정확히 알게 된 사회에서 인본주의는 붕괴되고 인간은 다시 의미의 암흑기로 접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과학발전을 저지할 수도 없다. 

  과거 사피엔스는 전쟁, 기아, 질병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 문제들은 현대에 상당부분 해결되었고, 현대 사피엔스들은 불멸, 행복, 신성을 목표로 한다. 이에 대한 연구는 상당부분 진척되었고 실제로 유용성을 입증하고 있다. 성장을 위한 경쟁은 멈출 수 없다. (고3이 다같이 수능보이콧을 하게 하는것만큼이나 힘들 것이다.)계속된 과학발전은 '데이터교'의 완벽한 승리다음에야 완화될 것이며 그 때가되면 인간은 현재 가축들만큼이나 '데이터 생산 기계'가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건 주어진 미래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기 위함이다. 여러 관습들이 일본 잔재임을 깨달으면 그것을 하지 않으려 하듯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라리는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남긴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래가 디스토피아일지 유토피아일지는 모르지만 현대기술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