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Lab girl)』을 쓴 호프 자런(Hope Jahren)은 1969년 미네소타 오스틴에서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다. 오스틴은 여름이 길고 덥다. 겨울은 아주아주 더럽게 춥다. 게다가 연중 날씨가 흐리고 습하다. 아마 실내에서 활동할 시간이 많았을 것이고(덥든 춥든 극단적인 날씨는 인간을 실내로 몬다.) 그 활동시간을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보냈다고 한다. '과학자' 호칭이 학위에 주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탐구활동에 주어지는 것이라면 호프자런은 아주 어릴 적부터 과학자였던 셈이다. 아무튼 그녀는 그런 생활을 보내고 대학으로 진학한다.
그녀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지질학(geology)전공을 택했다. 학비를 벌려고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녀가 맡은 임무가 약 배달이었다.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서 대부분의 학생이 짧게 근무를 하고 그만두는데 여러 심리적 이유로 그녀는 오히려 밤샘근무를 자처했다. 성실한 근무 덕분에 승진하여 주사약을 통에 넣는 일을 하게 됐다. 그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이 책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지질학 공부를 하면서 '빌'을 만난다. 빌은 평생 그녀의 친구가 되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히피같기도 하지만 약은 하지 않는다. 자유롭고 예민하며 호프 자런과 개그코드가 비슷한 것 같아서 보기좋았다. 그녀는 공부도 열심히하여 우수한 성적(cum laude)으로 졸업했다. 그 후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토양학(soil science)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조지아 공대와 존스홉킨스대에서 부교수로 재직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게 좋지가 않아서 여러 고난을 겪는다. 순수과학에 투자되는 금액 자체가 적어서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을 뿐만 아니라(이 내용이 책 초반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남성이 지배한 과학계에서 성차별을겪는다. 그걸 보면 아주 많이 안쓰럽다.
이 책은 그녀가 결혼한 순간부터 출산하는 순간까지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한 심리로 묘사한다. 미화하지않고 어려움과 힘든 점을 말했는데 깊게 다가왔다.
그녀의 생각과 심리가 1부 뿌리와 이파리, 2부 나무와 옹이, 3부 꽃과 열매를 통해 드러난다. 뛰어난 토양학자답게 식물을 연구하면서 느낀 바와 생각을 간결하게 전달하고 동시에 본인의 생각을 드러낸다. 식물이 우리 생각처럼 수동적이지않고 복잡하고 뛰어난 메커니즘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식물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녀는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 수상했다. (풀브라이트에 대한 정보 : https://en.wikipedia.org/wiki/Fulbright_Program) 여성 최초로 매클웨인 메달을 받고 역대 4번째로 매클웨인 메달과 도나스 메달을 수여받은 과학자가 되었다. 그 후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인물에 선정됐다. 최근엔 유시민 작가가 알쓸신잡에서 이 책을 언급하여 유명해지기도 했다.
2015년 기준 세계 여성 과학자 비율은 28.8% 밖에 안된다.(출처 http://uis.unesco.org/en/topic/women-science ) 비율이 5:5가 되어야 좋다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미 여성과학자가 차별을 겪은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한데 '28.8%'라는 비율은 변화를 일으키기에 지극히 적어보인다는 것이다. 차별 당하는 사람이 수가 적으면 차별이 문화가 되기 쉽다. 잘못이 있어도 잘못인지 알기가 힘들다. 우리가 더 숙고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 이야기-★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미니즘을 팝니다.' 후기 (0) | 2019.10.25 |
---|---|
「세계사 편지」: 교과서를 찢어버리자 (0) | 2019.08.02 |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 (0) | 2018.11.17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를 읽고 (0) | 2018.10.27 |
『사기』를 읽으며 확실히 알 수 있는 한 가지 (0) | 2018.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