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상업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건 영화 '걸캅스'부터였다.
포스터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난 페미니즘 마케팅은 감독의 인터뷰로 화룡정점을 찍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 여자 주인공이 하는 건 드러운 개그와 헛짓거리고 사건해결은 마초적인 남자형사들이 도맡아한다. 성희롱 장면은 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에 도전했다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역함을 느껴서 페미니즘으로부터 거리를 둔 지 3년이 됐다. 우연히 이 책을 추천받았고 현재 문제의식과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
1. 19C ~ 20C 광고주는 여성이 '집안의 천사'에 분개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여성 소비자는 잠재력 만땅에 관습에 저항하고 공적 생활에 참여합니다.'라는 마케팅을 했다. 이 때 나온 용어가 신여성과 깁슨걸인데 깁슨걸은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테니스를 치고 법정에서 배심원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2. 19C 말 ~ 20C 초에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건 꼴사나운 일이었다.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티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을 '우리 앞마당에 있는 금광 파헤치기'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1세대 페미니즘의 물결에 올라타서 PR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즈와 손잡고 여성 흡연자 늘리기에 돌입했다. 이른바 '자유의 행진'을 조직해서 담배를 '자유의 횃불'처럼 들고 '또 하나의 성적 금기를 깹시다!' 외쳤다. 이 캠페인은 효과가 몹시 좋아서 1923년 여성 담배 소비자의 비율이 5%였는데 '행진' 이후에 12%로 늘었다. 다른 담배회사도 이걸 벤치마킹해서 여성 흡연자가 많이 늘었다.
3. 버지니아 슬림스는 애초에 직장 여성을 겨냥한 담배였다. 마케팅 취지도 '담배가 여성해방에 필수' 였다. '여성들이여 먼 길을 오셨군요!'라는 유명한 슬로건은 과거에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담배 연기를 여성이 흡입할 수 있게 된 것이 여성해방의 부산물이 아니라, 해방 그 자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1980년대가 되자 버지니아 슬림스의 시장 점유율은 0.24%에서 3.16%로 상승했다.
4.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분야의(양모, 향수, 땀내 제거제 등) 광고가 자유로운 신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신기한건 대부분의 광고가 어떤 식이든 남성을 등장시킨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가벼운 대결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는 이를 '여성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충분히 능동적 여성상을 보여줘야 하지만 그것이 기존 남성의 지위를 해치지는 않을것, 여성우월사회를 추동하는 광고혹은 제품은 아닐 것'을 고려한 결과라고 말한다. 가령 광고 속에서 셸리 핵이 연기한 찰리는 대낮에 거리에서 남자친구의 엉덩이를 두드리지만 저녁 식사는 반드시 샐러드를 주문한다.
...
'책 이야기-★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사 편지」: 교과서를 찢어버리자 (0) | 2019.08.02 |
---|---|
어느 여성과학자의 수필,『랩 걸(Lab girl)』을 읽고 (0) | 2018.11.29 |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 (0) | 2018.11.17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를 읽고 (0) | 2018.10.27 |
『사기』를 읽으며 확실히 알 수 있는 한 가지 (0) | 2018.05.12 |